한인타운 '사회인 야구리그'…"직접 뛰고 느끼는 야구, 제대로 즐깁니다"
주위엔 변변한 그늘 하나 없다. 후텁지근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맺힌다. 뜨거운 태양과 이글거리는 그라운드를 향해 남자 10명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털썩 앉는다. "자 준비하시고…시작합니다!" 이 말이 끝나자 스프링클러에서 힘찬 물줄기가 쏟아져 나온다. 자리에 앉았던 이들이 손으로 스프링클러를 밀자 물줄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잔디는 금새 물방울을 머금고 먼지가 일던 흙은 짙은 갈색으로 촉촉해진다. 그들만을 위한 다이아몬드가 싱그런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오자 야구장에 생기가 돈다. LA에는 최소 10개 이상의 사회인 야구팀이 있다. 동호회 개념의 사회인 야구팀까지 고려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많다. 야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는 야구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을 뛰고 느끼는 야구로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입조건은 의외로 간단하다. 임호교 LA 사회인 야구연맹 회장은 "대부분의 팀 입단조건은 최소 연령기준 이외에는 별로 없다. 다만 야구에 대한 사랑과 꾸준한 참여가 사회인 야구를 제대로 즐기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가입조건은 쉽지만 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하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기가 주말 오후에 있기 때문에 약속을 취소해야 되는 일이 많은 데다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경기 내내 벤치만 지킬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덕 아웃에서는 서로 대화를 주고 받고 득점 상황에서는 목청껏 응원을 펼친다. 환희와 실망이 공존하는 야구장에서 이들은 관중과 선수를 오가며 완벽한 '야구인'으로 활약한다. 타석에서 멋진 안타를 뽑아내거나 수비에서 어려운 타구를 멋지게 잡아내기라도 하면 그 기쁨은 더 할 나위 없다. 이 날 경기장에서는 한인팀인 LA타이거스와 트라이시티의 대결이 펼쳐졌다. 이들은 동료들이 상대편 투수의 공을 고를 때마다 무슨 말인가를 힘차게 외쳤다. 한데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도대체 뭐라고 소리치는 건가요?" "볼인 공을 골라내면 선구안이 좋다고 해서 '굿 아이'(Good Eye)라고 하는 겁니다." 최근 아칸소에서 이사해온 LA타이거스 소속의 조셉 김(37)씨가 설명해준다.사회인 리그 선수의 이력은 그 숫자만큼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공놀이를 잊지 못해서, 어떤 사람은 이루지 못한 슬러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다.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야구 경기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어 문을 두드린 사람이 있고 멋진 프로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있게 입문한 사람도 있다. 일과 목표, 성격, 계기는 다르지만 야구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꿈의 구장’인 셈이다. 이 날 경기에서 LA타이거스의 김근홍(27)씨는 홈런을 날렸다. 베이스볼 카드 매니아인 김 씨가 3번 타자의 위용을 떨치는 순간이다. 뛸 듯 기뻐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세러머니도 없고 빠르고 조용히 베이스를 돌아 들어온다. 상대팀 투수를 배려한 것이란다. 김 씨가 덕 아웃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동료들의 축하 세례가 이어진다. 한편, 경기장 밖에서는 즐거운 대화가 한창 꽃피고 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선수들의 가족이다. 간혹 남편이 타석에 들어서면 경기장을 응시하다 다시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로 즐거운 수다에 빠져든다. “주말에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오붓한 시간을 나눌 수 없어서 아쉽지 않나요?” “연애할 때부터 사회인 야구를 했기 때문에 이 시간만큼은 어쩔 수 없어요. 아이들도 야구장 오는 걸 좋아하구요.” 이 정도면 야구인 가족의 대답이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 그런지 덩달아 신이 났다. 아이들은 수많은 삼촌들이 생겨서 좋고 같이 놀 수 있는 또래들이 있어 더욱 좋다. 사회인 야구 경기는 7회 말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이 있는 이들은 자연스레 가족 단위의 식사모임으로 이어진다. 그냥 야구팀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이다. 이상배 기자 [email protected]